인도동향

인도 최고 부자 무케시 암바니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 회장

관리자 2018.05.27 12:26 조회 1478
*** 릴라이언스는 인도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아야 할 사람입니다.
중앙일보가 정리를 잘 해놓았네요.
맨 마지막에..엄청난 부를 이루어 놓았지만 채식주의자이고 술은 입에 대지도 않는다..가 인상적이네요. 과거에 중국 진출을 할때 "꽌시" 를 쌓기 위해 술로 Brother hood 를 만드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인도는 어려운 나라임에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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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케시 디루바이 암바니는 인도를 대표하는 경영인이다. 포브스 세계 부호 순위에 따르면 암바니는 2018년 4월 13일 현재 개인 재산 411억 달러로 19위에 올랐다. 인도 최고의 부자 자리는 12년째 지키고 있다. 전 세계 힌두교도 중에서도 최고의 부자다. 2016년 38위였던 그는 계속 재산을 늘리고 있는 셈이다.

  
무케시 디루바이 암바니(Mukesh Dhirubhai Ambani, 61)는 인도를 대표하는 경영인이다. 그는 전 세계 힌두교도 중 최고의 부자다. 재산만 많은 게 아니라 영향력도 강력하다. 포브스가 발표하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사람’ 순위에서 인도인으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2017년 포브스의 ‘글로벌 게임 체인저’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인도와 세계를 움직이는 아시아 경영인의 한 사람으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다. 
  
암바니는 인도 최대의 기업으로 평가 받는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스(Reliance Industries Limited, RIL)의 회장 겸 이사회 의장이다. 이 회사의 지분 44.7%를 보유해 최대주주의 위치도 차지하고 있다.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스는 주로 석유와 가스 분야에서 활동하는 기업으로, 원유 채굴업과 석유화학 산업을 주력으로 삼고 있다. 포천 글로벌 500기업이며, 인도에서 시장가치가 가장 높은 기업이다. 그뿐만 아니라 유통에서도 인도 최고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스는 인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소매업 체인인 릴라이언스 리테일(Reliance Retail Ltd, RRL)을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다. 
  
무케시 암마니는 2세 경영인이다. 선친인 디루바이 암바니(Dhirubhai Ambani, 1932~2002)가 작고 야심만만한 소상공업체를 창업했다면 아들 무케시는 이를 아버지와 함께 인도 굴지의 기업으로 키웠다. 공동 경영했다고도 할 수 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이후 무케시는 자신의 몫으로 받은 기업을 더욱 키워 글로벌 그룹으로 만들어냈다. 
  
1966년 선친이 뭄바이에서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 창업
  
집안의 경영 이력을 잠시 살펴보면 이런 사실이 잘 드러난다.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는 1966년 그의 선친인 디루바이 암바니가 뭄바이에서 창업한 그룹의 모기업이다.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에서 가난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난 디루바이는 16세 때 가족을 떠나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당시 인도처럼 영국령이던 ‘아덴 식민지(현재의 예멘)’의 아덴으로 떠났다. 디루바이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아덴에서 일한 곳이 가솔린 가게라고 밝혔다. 주유소인 셈이다. 무케시 암바니가 1957년 4월 19일 아덴에서 태어난 이유다. 
  
디루바이는 1958년 인도로 귀국한 뒤 뭄바이에서 무역업을 시작했다. 예멘에서 함께 살았던 사촌 참파클랄다마니와 동업해 무역회사를 차렸다. 창업 당시 전화 한 대, 탁자 하나, 의자 셋이 있는 33㎡짜리 작은 사무실을 사용했다. 방 두 개짜리 작은 아파트에서 가족과 함께 거주했다. 무케시는 이런 집에서 부모, 동생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디루바이는 처음에는 인도의 향신료를 예멘에 수출하는 사업을 벌였지만 이내 폴리에스터 수입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당시 인도 정부는 외화를 통제해 해외에서 섬유 원료인 폴리에스터를 수입하는 허가를 얻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수입허가서는 엄청난 이익을 보장했다.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다. 
  
디루바이는 1965년 사촌과 동업을 끝내고 독립했다. 사촌이 꼼꼼하고 안정을 추구하는 데 비해 디루바이는 적극적이고 모험을 피하지 않아 서로 성격에서 차이가 많았다. 디루바이는 릴라이언스 텍스타일을 설립하고 섬유산업에 뛰어들었다. 폴리에스터 실을 수입하면서 그 가치와 가능성에 눈뜬 것이다. 이 섬유업체는 지금 기준으로는 벤처기업이나 다름없었다. 1966년 처음으로 섬유 공장을 세웠다. 사업은 날로 번창해 1977년 주식을 공개했다. 당시 수천 명의 투자가가 증권거래소로 몰려들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무케시는 인도의 화학기술연구소(Institute of Chemical Technology: UDCT) 대학에서 화공학을 전공하고 미국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 진학했으나 부친의 사업을 돕기 위해 중간에 학업을 그만두고 귀국했다. 1980년 아버지가 감당할 수 없이 소중한 사업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당시 인디라 간디 총리 정부는 섬유산업을 진흥할 목적으로 이전까지 국영업체가 전담했던 폴리에스터 실(polyester filament yarn, PFY)의 건설 허가를 받아냈다. 이 면허는 보통 어렵게 받은 게 아니었다. 타타와 비를라스를 포함한 45개 업체와 경쟁한 끝에 따냈다. 이는 디루바이가 사업을 비약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래서 장남인 무케시는 아버지의 면허 획득을 돕기 위해 스탠퍼드 MBA 과정을 일시 중단하고 귀국했다. 아버지는 똑똑한 아들 무케시가 필요했다. 이 라이선스는 스탠퍼드 MBA 학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소중했다. 무케시는 아버지와 머리를 맞대고 밤낮으로 노력해 이를 따냈다. 릴라이언스 그룹에 날개를 달아준 폴리에스터 실 생산공장 허가는 아버지 디루바이와 아들 무케시가 함께 만든 셈이다. 
  
면허를 받은 뒤에도 무케시는 스탠퍼드로 돌아가는 대신 일에 몰두했다. 폴리에스터 실로 섬유를 생산하는 외에 1991년부터는 또 다른 석유화학 산업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릴라이언스 그룹의 확장을 주도했다. 릴라이언스 그룹은 아버지 디루바이가 창업했지만 지금과 같은 거대 기업으로 키우는 작업은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한 셈이다. 
  
릴라이언스 커뮤니케이션의 전신으로, 그룹의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단초가 된 릴라이언스 인포컴(Reliance Infocomm Limited)을 설립한 것도 무케시였다. 암바니는 그룹의 핵심 산업이 된 석유산업도 담당했다. 2010년 하루 66만 배럴을 생산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유전 시설을 인도의 잠나가라에 설치했다. 그는 석유산업을 석유화학, 전력은 물론 항만과 관련 인프라와 통합해 에너지 기업으로서 시너지를 높였다. 
  
디루바이는 릴라이언스 그룹을 비를라 그룹, 타타 그룹과 함께 인도의 3대 그룹의 하나로 키웠다. 비를라 그룹은 서부 라자스탄주 출신의 발데오 다스 비를라(1894~1983)가 창업해 섬유, 자동차, 화학, 해운으로 영역을 확대한 거대 기업이다. 타타 그룹은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 출신의 잠쉐티 누세르완지 타타(1839~1904)가 창업해 자동차, 제철, IT, 전력 등에 100개 이상의 기업을 거느리고 있다. 
  
릴라이언스 그룹 확장 주도하면서 경영 전면에 나서
인도 서부 구자라트 주의 최대 도시인 아마다바드에 설립한 릴라이언스 리테일의 몰 외관. / 사진:위키미디어

인도 서부 구자라트 주의 최대 도시인 아마다바드에 설립한 릴라이언스 리테일의 몰 외관. / 사진:위키미디어

 릴라이언스는 2002년 창업 회장인 디루바이가 세상을 떠나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경영권을 둘러싸고 무케시 암바니와 동생인 아닐 암바니 사이에 치열한 분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형제는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으며 결국 어머니가 중재에 나섰다. 그 결과 무케시는 그룹의 주력 부문인 석유, 가스, 석유화학 부문을 맡고 아닐은 전력, 통신, 금융 부문을 분할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서로 상대방의 분야에 뛰어들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곧 문제가 불거졌다. 무케시가 맡은 에너지 부문은 규모는 컸지만 확장성에서 떨어졌다. 아닐이 맡은 부문은 한결같이 미래 성장 가능성이 컸다. 특히 통신은 미래를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는 업종이었다. 인도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인도는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규모의 거대 통신시장이다. 13억2500만 명이라는 엄청난 인구가 뒤를 받치고 있다. 인도 정부 통계에 따르면 인도 내 통신 이용자는 2015년 12월 기준 약 10억4000만 명이다. 스마트폰 이용자 수는 2021년까지 8억1000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스마트폰 트래픽은 매달 4.5엑사바이트(EB)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인도 통신서비스 시장은 고성장 중이다. 2020년까지 연평균 10.3% 성장해 1조30억9000만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400만 명의 직접 및 간접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는 주요 국가 기반산업이다 보니 정부도 통신 산업 진흥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인도 통신시장의 진화다. 인도 통신시장은 4G를 통해 급격히 재편되는 분위기다. 4G와 3G 네트워크 수요가 늘면서 시장 규모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통신장비, 스마트폰 제조업, 유통 등 관련 분야도 동반 성장할 전망이다. 인도 정부는 제조업 진흥 캠페인인‘Make in India’를 펼치고 있는데 이는 스마트폰 제조 산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삼성, 마이크로 맥스와 같은 기존 제조업체 외에도 샤오미, 모토롤라, HTC, 아수스, 레노버와 같은 후발 업체들도 인도 현지에서 스마트폰을 제조하고 있다. 
  
인도 정부는 통신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7개 주파수대에 주파수 경매제를 승인하고 839억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통신업체들의 주파수 사용권과 관련해서도 유연한 정책을 펼쳐왔다. 선금지불과 분할지불을 모두 허용한 것은 물론, 통신업체들의 사용이 활발하지 않은 주파수의 사용권을 서로 판매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 합병 등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형통신업체가 등장하고 있다. 
  
무케시 암마니는 통신시장에서 사업 확대를 위한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암바니는 2010년 텔레콤 산업으로 사업 영역을 새롭게 확장했다. 그는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의 자회사로 릴라이언스 지오 인포컴(Reliance Jio Infocomm Limited)을 세우고 통신산업에 도전장을 던졌다. 
  
릴라이언스 지오 인포컴은 인도 정부의 통신정책을 철저히 활용해 탄생했다. 주파수 사용권 양도와 기업 합병 과정을 거쳤다. 무케시는 2010년 6월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를 통해 인포텔 브로드밴드 서비스(Infotel Broadband Services Limited: IBSL)라는 업체의 지분 96%를 7억4000만 달러에 구매했다. 인포텔 브로드밴드 서비스는 비상장회사였지만 그해 초 4G 통신 경매에서 22개 전체 서클의 운영권을 확보한 인도 유일의 통신업체가 됐다.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로 넘어가 자회사가 된 뒤인 2013년 1월 회사 이름을 릴라이언스 지오 인포컴으로 으로 바꿨다. 
  
이 회사는 LTE 모바일 네트워크 운용사업자로서 모바일 전화사업과 무선 브로드밴드 사업을 벌인다. 4G LTE 서비스 네트워크만 제공할 뿐 2G/3G 기반의 서비스는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동생 아닐의 영역에 뛰어들지 않겠다는 영역 분할 약속을 묘한 방법으로 지켰다. 
  
릴라이언스 지오 인포컴은 2016년 9월 인도 통신시장에서 공격적인 영업에 들어갔다. 무료 음성통화와 낮은 LTE 데이터 요금 등 매력적인 정책을 앞세워 소비자들에게 무섭게 파고들고 있다. 특히 무료 4G 피처폰인 ‘지오폰’을 출시해 인도 통신시장을 뒤흔들었다. 
  
무케시는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2월 동생인 아닐이 운영하던 릴라이언스 커뮤니케이션의 지분까지 흡수하면서 가속페달을 더욱 강하게 밟고 있다. 릴라이언스 커뮤니케이션은 모두 2500억 루피(약 4조9500억원)에 이르는 부채에 허덕이며 채무불이 행 직전까지 간 상황이었다. 이 회사는 이미 경영 악화로 지난 2016년 9월 인도 이동통신업계 1위인 에어셀(AIRCEL)과 합병하기로 했다. 하지만 ‘법률 규정에 관한 불확실성’ 등을 이유로 지난해 10월 양측이 합의해 합병이 무산됐다. 에어셀이 릴라이언스 커뮤니케이션의 막대한 부채 때문에 합병에 회의적으로 변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결국 아닐은 지분 대부분을 무케시에게 넘기고 이동통신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기로 했다. 릴라이언스 커뮤니케이션이 보유한 주파수 대역폭과 4만 3000여 개의 기지국까지 넘어갔다. 
  
뭄바이 27층짜리 안틸리아 빌딩에서 거주
  
무케시와 아닐 형제는 처음부터 사이가 나빴던 것은 아니었다. 둘은 1970년까지 뭄바이의 방 두 개짜리 아파트에서 함께 살았고 나중에 14층짜리 아파트를 통째로 구입해 최근까지 두 가족이 층을 나눠 함께 살았을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 형제는 뭄바이의 힐그랜지 고교를 함께 다녔다. 사업 분배 문제로 잠시 소원했던 관계는 릴라이언스 커뮤니케이션 지분 인수로 다시 끈끈해지고 있다는 관측이다. 
  
무케시는 현재 뭄바이에 있는 27층짜리 안틸리아라는 빌딩에서 부인과 2남 1녀의 자녀와 함께 살고 있다. 이 집은 10억 달러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개인이 거주하는 주택 중 가장 비싼 건물로 통한다. 그는 엄격한 채식주의자이며 술도 절대 마시지 않는다. 단골 식당은 대학 시절 다녔던 학교 앞 음식점이다. 사실 인도에는 종교적 특성상 채식주의자가 많으며 술을 입에도 대지 않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부와 명예를 한 손에 쥔 다음에도 그런 수도사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무케시가 자신에게 엄격한 면모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기사 출처 : http://news.joins.com/article/22658401